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혈압과 맥박을 시시각각 관찰하는 장치들이 달려 있었다. 머리 옆에서는 혈액투석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고, 각종 기계음들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분위기를 보니, 내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신장내과 선생님께서 내 주위에서 차트를 넘겨 보고 계셨고, 아랫년차 전공의 여선생님이 침대 맡에 서 있는 걸 보니 내 담당의사인 것 같았다.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중간중간 기억이 끊겼다. 그때마다 모니터 상의 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한 번은 모니터링 기계에서 큰 경고음이 울리더니 다들 달려들어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려던 것을 손사래 쳐서 말리기도 했다.
"저 의식이 있어요!"
화장실에 작은 볼 일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간호사가 말하기를, 어차피 내려올 수도 없고 투석중이라 나오는 소변이 없을 거라 이야기해 주었다.
'밝은 불빛에 기계음을 들으며 누워있는 시간이 이렇게 힘들구나.'
몸을 배배 꼬며 전공의 시절 여러번 겪었던 중환자실 환자들의 섬망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날, 병색이 짙은 얼굴로 외출을 나갔다.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에 한혜진씨가 아주 유쾌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 근처가 집이었을까? 사인을 해달라고 갔더니 '근처에 오면 언제든 연락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었다. 아픈 이에게 드러나는 동정심을 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나는 얼마나 남았을까?
어느새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중환자실 내 자리에 누워 있었다. 신장내과 과장님이 회진을 오셨기에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으면 하고 여쭈어 봤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길어도 하루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몇몇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만나러 면회를 왔다.
"중환자실 환자중에 제일 젊네." 누군가 던진 어색한 농담이 무거운 분위기와 섞이지 못하고 공기 중에서 맴돌았다.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또 유서를 남기고 싶었는데 내 정신도 육체도 모두 그걸 해낼 힘이 없었다. 정신줄이 끊어졌다 붙었다 하는 느낌이었고, 몸은 축 늘어져 침대에 녹아내린 기분이었다.
죽음 앞에 미련없이 담담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막상 젊은 날에 눈을 감으려니 마음이 요동쳤다.
그렇게 나는 죽은 듯했고, 그렇게 잠에서 깨어났다.
지독하게 생생한 꿈이었다.
2018.05.01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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